전화 받으셨죠?
글·그림 | 김상철
제법 권위가 있다는 공모전 심사장입니다.
어제 오후 늦은 시간에 연락을 받고 나름 마음의 준비는 하였지만
그래도 막상 도착해 보니 내심 조심스럽고 조금 긴장도 됩니다.
심사를 승낙한 밤에 몇 통의 전화가 있었습니ㅏㄷ.
조금은 소원했던 선배는 친한척하며 안부를 묻다가
비굴한 웃음 사이로 잘 부탁한다는 말을 흘립니다.
언제나 어려웠던 선생님도 손수 전화를 하셔서
마치 아무 일도 아닌 것같이 부탁으 명령처럼 합니다.
그저 건성으로 들었지만 그 말들이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닙니다.
입구에 모인 이들은 심사위원들인 모양입니다.
몇몇은 그나마 눈에 익지만 나머지 몇몇은 낯섭니다.
그들은 심사는커녕 심사를 받기에도 모자랄 인물들이어서
더불어 어울린다는 것조차 꺼려지지만 그렇다고 내놓고 말할 처지는 못 됩니다.
이윽고 심사가 시작되자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심사받아 마땅할 이들이 오히려 그야말로 심사의 달인 수준입니다.
작품들을 미처 다 돌아보지도 않았는데 한 인간이 다가와 슬며시 말을 건넵니다.
"혹시 마음에 두신 작품 있으십니까?"
그 말은 마치 "혹시 도에 관심 있으십니까?" 라는 말같이 들립니다.
"혹시 없으시면 저기 저 작품 좀 부탁드립니다"
선배가 부탁하고 선생님이 명령한 작품입니다.
한눈에도 어설프기 짝이 없을 뿐 아니라 누군가의 냄새가 많이 납니다.
미처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눈만 말똥거리며 머뭇거리는 사이
사내는 가는 눈을 뜨고 묘한 웃음을 지으며 옆구리를 툭 치며 한 마디 압니다.
"전화 받으셨죠?"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을 기억해보면
이런 순간에 단호하게 "아닙니다.", "안됩니다." 라고 말해야 하는데
비겁한 입술은 그저 움찔거릴 뿐 차마 속마음을 내뱉지 못합니다.
한순간 비겁하면 평생 행복하고, 또 좋은게 좋은 거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위인은 고사하고라도 소인 잡배들과 어울려 공모를 하고 돌아오는 길
심사비라고 받은 봉투가 주머니 속에서 더러운 벌레마냥 꿈틀댔습니다.
그래서 소인은 넘쳐나지만 위인은 드물고
공모전(公募展)을 공모전(共謨展)이라 하는 모양입니다.
공모(公募):일반인에게 공개하여 모음
공모(共謨):(주로 옳지 못한 일을)두 사람 이상이 짜고 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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