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붓을 들고 작가 행세를 한지 그럭저럭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그간 아이들은 어찌 자랐는지 어느새 제법 어른 티가 나고
궁색한 화가 살림에 이력이 났는지 집사람은 이제 별반 기대도 하지 않는 눈치입니다.
되돌아보면 어찌 살아왔는지 참 꿈같이 아득할 따름입니다.
처음 붓을 잡을 땐 정말 꿈도 많았었지요.
정성을 다해 선생님들을 모셨고 철마다 안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또 명절 때면 참 고민 많이 해서 선물을 들고 찾아뵈었었지요.
선배들이 전시라도 할라치면 온갖 굳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팸플릿 발송, 포스터 부착, 작품 운반에 디스플레이까지도 기꺼이 도맡아 했습니다.
또 전시마다 부지런히 얼굴을 내밀고 뒷풀이에 어울려 소주잔도 적잖이 기울였습니다.
철마다 국전이며 공모전에 빠짐없이 작품을 내면서
행여나 하고 소식을 기대해 보지만 결과는 언제나 역시나 였습니다.
빚을 내서 개인전도 열어 이제 웬만큼 횟수도 채웠습니다.
이렇게 참고 견디면 언젠가는 중진을 거쳐 원로에 이르게 되고
그러면 화단에서 인정도 받고 팍팍한 살림도 좀 펼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검던 귀밑머리에도 흰 빛이 보이기 시작하고
숱이 많아 오히려 걱정이던 머리는 어느새 듬성해졌습니다.
선생님, 선배들은 어쩌다 공연히 나이를 묻고는 한마디씩 합니다.
"아이고 네가 언제 그렇게 나이를 먹었냐!"
허 참! 나이는 당신들만 드시는 모양입니다.
옛 날 좋은 시절 이야기를 하실 때 마다 제 속은 참 많이 쓰립니다.
그때 당신 나이가 바로 지금 제 나이입니다.
저도 이 나이가 되면 당신처럼 그렇게 될 줄 알았었지요.
그런데 변한 것이라고는 도무지 없네요.
여전히 선생님은 선생님이고 선배는 선배이고 저는 접니다.
맵고 모질다는 시집살이도 끝이 있고,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던데
참 이 길은 무슨 길인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그런 길인 모양입니다.
정말 계속 가야하는지 이제는 저도 자신이 잘 서지 않습니다.
예? 뭐라고요?
술이나 마시라고요?
적어도 이제는 작품은 나르지 않냐고요?
아! 예에~ 그러고 보니 그건 그렇네요.
쭈우욱~~캬~아...... 근데 오늘은 소주가 왜 이렇게 쓰답니까?
글·그림｜김상철 미술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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