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플레이의 달인
내일 큰 전시 오픈이어서 오늘 작품을 걸어야 합니다.
하늘같은 선배님, 선생님부터 신출내기의 것까지 많은 작품들이 전시장에 놓였습니다.
이럴 때면 언제나 디스플레이가 문제입니다.
누구는 그냥 나이순대로 해야 한다하고
누구는 가나다순으로 하는 것이 좋다고도 합니다.
또 어떤 이는 같은 경향끼리 모아야 작품이 산다고 주장합니다.
전시장마다 좋은 자리가 있고 또 조금 못한 자리가 있게 마련입니다.
누구나 좋은 자리에 자신의 작품이 걸리길 바라겠지요.
그러나 그 자리는 이미 임자가 따로 있습니다.
지엄하신 원로 대가들의 작품은 언제나 그 자리에 당연한 듯 걸리게 마련입니다.
작품도 좋지만 걸린 자리마저 빼어나니 작품은 절로 빛이 납니다.
저는 아침부터 온갖 허드렛일을 다 하면서 그 자리를 내내 보아왔지만
저 같은 신출내기가 어디 감히 그 자릴 탐내겠습니까.
어렵사리 디스플레이 순서가 정해지고
그 많은 작품들을 일일이 벽에 잘 정돈하여 걸어 놓습니다.
일을 하는 동안에도 내 관심은 언제나 내 작품이 어디 걸릴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작품은 전시장 구석, 화장실 입구에 걸렸습니다.
작품도 여물지 않았지만 걸린 자리마저 구석 후미진 곳이라
당체 빛이 나질 않고 오히려 초라해 보입니다.
그때 갑자기 전시장 문이 벌컥 열리며 한 원로선생님이 들어서십니다.
전시장을 한번 휙 둘러보시더니 한 말씀 하십니다.
"아니 이걸 디스플레이라고 한 거야? 다시걸어."
아침부터 고생을 하며 이제 겨우 일을 마쳐 가는데
어찌 이제와서 이런 까탈을 부리시는지 야속하고 밉기까지 합니다.
몸은 이미 피곤한데다가 순간 마음마저 힘들어 집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한 말씀 하십니다.
"이 사람들은 좋은 자리에 아주 여러 번 걸려 본 사람들이야."
"한번쯤은 젊은이들에게 좋은 자릴 양보할 줄도 알아야지..."
"좋은 작품은 아무리 어둡고 누추한 자리에서도 절로 빛이 나는 법이거든..."
디스플레이를 마치고 돌아 나오는 길에 뒤돌아 보니
제 작품이 전시장 중앙 가장 좋은 자리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피곤도 잊은 지 오래도 그저 계속 바라보고만 싶습니다.
원로 선생님도 돌아보시며 한마디 하십니다.
"그래! 이제야 제법 그럴 듯 하구만..."
"선생님! 감사합니다."
글·그림｜김상철 미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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