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주는 선물
이제 나이가 점차 지긋해진 작가가 말했습니다.
"이젠 눈도 침침해지고 손도 둔해져서 그림그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아.
정말 예전 같지가 않아. 이젠 늙었어." 라며 한숨을 길게 내쉽니다.
누군들 나이를 먹지 않을 수 있고 언제나 청춘일 수 있겠습니까?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렸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지 않더랍니까?
그런데 그림 그리는 이에게 나이 든다는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에야 재주도 번뜩일 뿐 아니라 손도 날렵하여
보이는 것들을 모두 그려내며 뽐내고 자랑했겠지요.
그러나 젊은 눈에 보이는 것들은 종종 눈을 현혹시키고
좋은 재주는 그저 손끝에서 맴도는 그런 것이기 십상입니다.
보이는 것은 눈에서 그치고, 그려진 것은 손에서 멈춰 버리는 것이지요.
이윽고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면 눈은 침침해지고 손은 둔해져
보지 않아도 될 것과 반드시 보아야 할 것이 분명해지고
그리지 않아야 될 것과 반드시 그려야 할 것을 구분 지을 수 있게 마련이지요.
세월은 자연스럽게 손끝의 재주를 거둬들이고
교만하고 지나치게 민감했던 시력도 적당히 조절해 주어
무엇이 껍데기고 또 무엇이 알맹인지를 헤아릴 수 있는
현명한 지혜의 눈과 너그러운 마음을 대신 깃들게 해 주는 것이지요.
수많은 선인들이 말년에 필생의 걸작을 남기셨던 것은
그저 우연이 아니라 이런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받아들여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손으로를 표현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찾아낸 까닭이 아닐까요?
만약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젊은이처럼 치기어린 손끝의 재주나 뽐낸다면
그것은 마치 달디 단 사탕만 빨기를 고집하는 어린아이와 같아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이 사탕인 줄 알고 평생을 살아가는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세상에 어찌 맛있는 것이 단 것 뿐이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맛있는 것이 세상에 널려 있는데
맛도 보지 못하고 스러져 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세월이 주는 선물이 아닐까요?
글·그림｜김상철 미술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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