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하루-그 분을 아시나요?
전시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여느 날처럼 해가 저물어 갑니다.
관람객도 끊겨 문 닫을 준비를 할 즈음 누군가가 전시장에 들어섭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낯익은 얼굴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들고 눈인사를 보냅니다.
그런데 누군지 도무지 잘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전시장을 여류 있게 둘러보시는 그 분의 품세는 정녕 전문가임에 틀림없습니다.
안면이 있는 걸 보면 분명 미술계 분이고, 나이를 보면 원로에 가깝습니다.
누구실까 머리를 쥐어짜는데 어느새 그 분은 접대용 탁자에 앉았습니다.
"그동안 그림 좀 사모았는데, 자네 그림이 참 마음에 드는구먼...
저기 저 작품은 얼마나 되지?"
얼핏 턱으로 가리킨 것은 이번 출품작 중 가장 큰 작품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작품은 팔리지도 않아 액자값, 대관료도 걱정이었는데
이런 고마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이 조금 비싸다는 표정을 보이는 듯 하자
저는 얼른 조금은 비굴한 자세로 깎아드릴 수 있다고 눈치를 보며 아룁니다.
그 분은 전시가 끝나는 날 작품을 가지러 오마며
음료수를 맛나게 드시고 과자도 한 움큼 주머니에 넣고 돌아가셨습니다.
드디어 전시가 끝나는 날, 나는 진작부터 그 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철수를 도와주러 온 선배에게 은근히 자랑도 하면서 온종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자 되어도 그 분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큰 작품은 아직 포장도 하지 못한 채 여전히 전시장에 걸려 있습니다.
그때 그 분이 전시장밖으로 지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막 뛰쳐나가려는 순간 선배가 급히 소매를 잡아끕니다.
"야! 혹시 네가 기다린다는 컬렉터가 저사람이냐?"
"저 사람... 오픈 때마다 나타나는 단골손님이야... 화랑가에선 아주 유명하지."
"혹시 너한테도 그림 산다고 음료수 얻어먹고 그림 설교하고 갔냐?"
아! 그러고 보니 정말 그렇습니다.
어쩐지 낯이 익너라 했더니 언제나 오픈자리마다 어김없이 나타나시는 그분이었습니다.
전시장을 하도 다녀 이제는 연륜마저 느껴지는 모양새와 말주변은
여느 원로 대가나 평론가의 그것에 비교하여도 모자람이 없는 경지에 이른 것이었습니다.
순간 반가운 소식을 기다리고 있을 아내 얼굴이 스쳐 지나가면서 다리가 풀립니다.
공연히 부끄럽고 분하여 애꿏은 후배들에게 냅다 소리를 지릅니다.
"야! 빨리 그림싸라 ...XX..."
글·그림｜김상철 미술칼럼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