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길이와 소통하기
나는 강아지를 그립니다.
우리집 강아지 복길이가 너무 귀엽고 예뻐 복길이를 그립니다.
그림 속에는 그저 귀여운 강아지가 그려져 있는데도
사람들은 자꾸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 합니다.
글깨나 쓴 다는 평론가가 점잖게 말합니다.
"개로 상징되는 이 표현 속에서 우리는 자본과 권력에 길들여져
점차 본연의 자의식마저 잊어버리게 되는 현대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의식적으로 꼬리를 흔들고 있지만 왠지 고독하고 슬픈 저 강아지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초상화일 것입니다."
날마다 온갖 말썽을 부리고 사고를 치는 복길이가 순간 현대인의 표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언제나 개구쟁이처럼 꼬리치며 집안을 뒤입어 놓은 것을 낙으로 삼던 녀석이
갑자기 우울하고 고독한 내면을 지닌 심각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기왕에 이렇게 된 것 나도 할 말이 없어 그냥 입을 다물어 보립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림을 보고는 고개를 주억이며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습니다.
이제 복길이는 본래의 모습대로 그런 강아지가 될 수 없습니다.
마음대로 뛰어놀 수도 없고
아무것이나 물어뜯고 아무 곳에나 오줌을 쌀 수도 없습니다.
저도 복길이를 마구 다룰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복길이는 진지하고 심각한 내면을 지닌 무서운 녀석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복길이는 다시는 꼬리를 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대신 사람들이 복길이 처럼 꼬리를 치며 공감을 표시합니다.
평론가는 이를 소통이라 말하며 흐뭇해합니다.
집에 돌아오니 언제나 처럼 복길이가 꼬리르 치며 다가옵니다.
나는 가볍게 녀석의 엉덩이를 걷어찹니다.
이것이 나와 복길이의 진정한 소통방법입니다.
꺠갱하고 토라졌다가는 이내 다시 꼬리를 치며 다가오는 복길이는
누가 뭐래도 그냥 보통 강아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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