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팸플릿을
보내지 말아 주세요!
전시를 앞두고 팸플릿을 찍었습니다.
나름 인쇄도 잘 된 것 같고 디자인도 마음에 듭니다.
서둘러 주소록을 사서 발송을 하였습니다.
며칠 후 적잖은 양의 팸플릿이 반송되어 왔습니다.
어찌 제대로 된 주소록 하나 만들지 못해 이런 수고를 해야 되는지
내심 한심하기도 하고 짜증도 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목소리만으로도 이미 나이가 지그산 여자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은 제 이름을 확인하더니 전시를 축하한다는 말을 하고는
힘없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갑니다.
"제 아들 앞으로 도록이 배달돼 왔더군요.
제 아들도 그림을 그렸답니다.
참 여리고 착한 아이였지요.
그런데 이제 제 아들은 그림을 그리지 못한답니다.
작년에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저 먼 곳으로 영영 가버렸거든요.
어찌 그 아이를 잊겠습니까만은 애써 잊으려 몸부림 칠 따름이지요.
그런데 저희 집에는 적잖은 전시 팸플릳승리 배달되어 옵니다.
이런 우편물들이 올 때 마다 그렇게 잊고자 했던 아들 생각이 다시 떠오릅니다.
어떨 때는 아들이 보면 좋아했음직한 팸플릿들을 잘 모아두었다가
아이가 잠든 곳에 가져다 놓기도 했었지요.
그런 날은 밥도 넘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잠도 이루지 못하게 마련입니다.
정말 죽도록 힘들고 괴로운 것은 먹지 못하고 자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잊으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욱 새록새록 떠오르는 아들 생각입니다.
팸플릿을 받을 때마다 제 아들은 순간 살아났다가 이내 다시 죽어버립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이제 제 아들 앞으로 팸플릿을 보내지 말아 주세요."
애써 울음을 숨기며 이어가던 말씀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저는 뭐라 한마디 말씀도 드릴 수 없었습니다.
알고 그런 것도 아니고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지만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합니다.
죽은 아들이 저 같고, 그 아주머니가 마치 제 어머니 같아
어느새 코끝이 시려지고 눈물이 핑 돌다 톡 하고 떨어집니다.
글·그림｜김상철 미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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