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풍경 1.2
요즘 잘 나간다는 후배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채광 좋은 건물에 베란다도 있어 참 쾌적합니다.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한창 작업 중입니다.
단정한 머리에 흰 남방 단추 두어 개를 풀어 놓은 모양이 싱그럽습니다.
작업실 내부는 잘 정돈되어 마치 여느 카페 같습니다.
벽에는 거울이 걸려 있고 와인 병이 놓인 탁자에는 촛대도 있습니다.
실내는 온통 흰 색이고 조명은 크고 작은 것 여러 개가 곳곳을 비춥니다.
언제나 열심히 작업하는 후배인데 작품들이 보이질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묻습니다. 그 많은 작품들이 다 어디로 갔냐고...?
"에이, 누가 작품을 작업실에 쌓아 놓아요. 다른 곳으로 치워야지요.
작품을 작업실에 쌓아 놓으면 안 팔리는 작가로 오인 받아요."
씨익 웃으며 후배는 익숙한 솜씨로 와인 잔 두 개를 들고 자리에 앉습니다.
공연히 주눅이 들어 마치 포도주스 마시듯 와인 잔을 비우고 일어납니다.
언제나 열심인 선배의 작업실을 찾아갑니다.
사람 좋고 넉넉한 마음씨의 선배는 후미진 골목 끝에 작은 작업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좁은 공간에서 어렵사리 엉덩이를 걸치고 주위를 둘러봅니다.
선배의 작업실은 언제나 익숙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팔레트에는 굳은 물감들이 덕지덕지하고
희뿌연 형광등들은 나이 든 노인들 처럼 힘이 없습니다.
온갖 물건들이 어지러운 가운데 아주 오래된 질서를 알아서 갖추고 있습니다.
한쪽 공간에는 작품들이 마치 성처럼 쌓여 선배의 열정을 증언해주고 있습니다.
그나마 손님이라고 구석에서 마실 것을 준비하는 선배에게 묻습니다.
"어째 작업실이 좀 좁아진 것 같네요?"
흘낏 뒤돌아보며 선배가 대답합니다.
"지난 번 개인전 끝나고 작품들이 많이 늘었어. 이제는 더 쌓을 곳도 마땅치 않아."
이 좁고 옹색한 공간에 산더미처럼 쌓인 작품들......
팔리면 작품이고 안 팔리면 짐이 되는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공간에서
예술을 이야기하고 순수와 낭만을 들먹이기에는 뭔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 결벽증 환자를 연상시킬 정도로 잘 정돈된 후배의 작업실이 겹쳐지며
무언가 말을 해 줘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적당한 말이 떠오르질 않습니다.
그러다가 바보 같은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작품 참 잘 쌓았네요. 갈수록 잘 쌓는 것 같아요."
글·그림｜김상철 미술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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