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겉절이를 담그시나요?
봄이 되면 푸른 채소들이 입맛을 돋웁니다.
파릇한 봄배추로 겉절이를 담그면 그 맛이 일품이지요.
그렇다고 묵은 김장김치가 맛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깊고도 그윽하여 묵직하고 중후한 맛은 겉절이에 비길 수 없는 것이지요.
겉절이는 바로 담가 먹기에는 더없이 좋지만
하루만 지나도 그 파릇한 봄 내음은 사라져 버리고
물이 흥건해져 썩기 시작하면 냄새조차 고약합니다.
그러나 김장김치는 추운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오히려 향은 진해지고 맛이 깊어집니다.
이가 시리도록 알싸한 그 맛은 비할 수 없는 것이지요.
요즘 세태가 그저 젊고 새로운 것만을 좋아하는 경박한 시절이다 보니
그림도 마치 겉절이 같이 한번 먹기에 좋은 것만을 추구하는 모양입니다.
물론 신선하고 새로운 것도 좋지만
때로는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김장김치 같은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겉절이가 변하는 것은 부패지만
김장김치가 변하는 것은 숙성의 발효입니다.
부패와 발효는 같은 화학반응이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른 것이지요.
하나는 썩어 먹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다른 하나는 오히려 맛이 깊어집니다.
무릇 예술이란 것도 이런 것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것이 삶을 표현하고 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추운 겨울 같은 세상사를 겪은 연후에 비로소 제 맛이 들지 않을까요?
그저 하루 먹고 치울 것이라면 겉절이도 무방하겠지만
붓을 드는 이들의 꿈이 그저 그렇게 경박한 것만은 아니잖습니까?
아무리 세태가 신선하고 가벼운 것만을 좋아한다지만
깊고 은근하게 익어가는 김장독을 함부로 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어쩌면 지금이 바로 김장철이 아닐까요?
나만의 비법으로 김장을 담아 모진 세월 속에 숙성시켜 맛과 향이 진해지면
어느새 추위가 지나고 날이 풀려 귀한 손님이 오시는 날
종갓집 맏며느리가 고운 손으로 묵은 김치를 꺼내러 올 테니까요.
글·그림｜김상철 미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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