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날의 건배
한동안 소식 없던 후배가 전시를 한다는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들리는 소문에 참 모질게 고생도 많이 한 모양입니다.
그래도 전시를 한다하니 참 대견하여 안 가볼 수 없겠지요.
별반 이룬 것이 없는 녀석이라 전시장을 메운 이들의 면면 역시 그렇고 그렇습니다.
유명하고 잘 나간다는 사람들 보다는 비슷한 처지의 동료, 후배들이 함께 합니다.
그 흔한 화환 하나 없는 전시장 입구가 조금은 쓸쓸하고 서글픕니다.
하긴, 세상 인심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이겠지요.
안부를 묻고 작품을 둘러보는 사이 시간이 흐릅니다.
이내 근처 허름한 찌개 집으로 옮겨 뒤풀이를 합니다.
왁자한 분위기 속에 술잔이 도는데 후배가 들어섭니다.
박수로 오늘의 주인공을 맞으며 인사말을 청하니
후배는 떨리는 목소리로 어색하게 감사 인사를 합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간의 어려웠던 일들이 생각나는지 말문이 막혀버립니다.
눈물 사이로 띄엄띄엄 고맙다는 말들을 어렵게 전하다가
마지막에는 죽어도 그림을 그리겠노라고 다짐을 하며 아예 울부짖습니다.
눈물을 보이는 후배의 표정과 몸짓에서는 힘든 삶의 그림자가 절로 묻어납니다.
"자식, 괜히 울고 그래 ...... 눈물 마렵게."
옆자리 선배가 혼잣말을 하며 소주잔을 쭈욱 들이킵니다.
다시 술잔이 돌고 모두들 취해갈 즈음 선배가 일어서며 무언가를 전해줍니다.
후배 전시 도록을 넣은 봉투였습니다.
그리고는 "알지?" 한마디 하고는 씨익 웃으며 나가 버립니다.
봉투 속에는 반으로 접힌 파란 만 원짜리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선배 역시 살림이 곤궁하여 후배를 도와줄 여력이 없다는 것을 ...
후배에게 진심으로 해 줄 수 있는 것이 그저 이 정도라는 것을 ...
후배 역시 오늘의 술자리 계산이 많이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런 사정을 자리에 있는 모두가 너나없이 다 알고 있다는 것을...
슬쩍 옆 자리 친구에게 봉투를 건넵니다.
친구도 저간의 사정을 알고 있는지라 말없이 봉투 속에 손을 넣었다 뺍니다.
이렇게 봉투는 돌고 돌아 마침내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 왔습니다.
두둑해진 봉투에는 아예 받을 사람 이름까지 선명하게 인쇄 되어 있었습니다.
모두들 말 없이 바라보며 의미 있는 웃음을 지으며 술잔을 치켜듭니다.
"건배!"
글·그림｜김상철 미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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